신운섭집사 2023. 5. 25. 10:32

02 문제진단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은 제자도로의 부름이었으며, 철저한 순종으로 그 분을 따르라는 부름이었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사람들을 그들의 죄에서 해방시켜주는 동시에 위선자들에게는 정면으로 맞서 꾸짖는 것이었다. 좋은 소식이었지만 결코 안일한 믿음주의는 아니었다. 예수님은 그분을 따르는데 드는 대가가 매우 크며, 그 길은 좁고 찾는 사람이 적다고 가르치셨다.

그러나 현대 복음주의는 대체로 이러한 경고를 무시한다.  설교와 간증에서 예수님에 대한 설명이 모호해 지는 사이에 구원 얻는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경박한 견해가 세력을 넓혀간다.

 

예수님의 복음을 저버림

복음주의자들은 그저 그리스도에 대한 객관적 사실들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죄로부터 돌이킴이나 삶의 변화도 필요 없고, 그리스도의 주 되심에 복종하고자 하는 의지도 필요 없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은혜를 훼손할 뿐 아니라 믿음과도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성화 없는 칭의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구원 받았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그들의 삶은 전혀 구원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7;21). 즉 순종의 삶이 없다면 구원의 증거가 없다.  

성경은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지 스스로 점검 해 보라고 권면한다(고후13:5). “나무는 그 열매로 알기 때문에 (6:44)” 우리의 삶을 점검하여 우리가 열매를 맺고 있는지 살펴 보아야 한다. 또한 변화된 삶의 열매(요일3:10)가 삶 속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역사의 증거라고 가르친다. 참된 확신은 우리의 삶에서 변화를 일으키시는 성령의 사역(열매 맺는 삶)을 보는 데서 찾아온다.

 

역사적 배경

율법과 은혜의 요소들은 모든 세대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아 얻는다는 것이다(2:16).

우리보다 앞선 구약의 성도들도 모세의 율법아래 있었지만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4:3, 6-8,16).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기 위해(19:10),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기 위해(9:13), 세상이 예수님을 통해 구원 받도록 하기 위해(3:17) 오셨다.

예수님은 단순히 미래시대를 위한 교시가 아닌 구원 얻는 믿음을 선포 하셨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해야만 하는 유일한 메시지 이다.  

 

말씀을 잘못 구분 함

구원을 얻기 위해 반드시 그리스도를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구주로 믿고, 주인 되신 그리스도께 삶을 헌신하고 그분의 주권적인 권위에 복종해야만 한다 는 견해를 비성경적 이라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삼아라라고 하는 잘못된 주장을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주로 삼지 않는다. 이것은 예수님의 주권적인 권위를 거절하는 불신이다.예수님은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것은 회개, 믿음 그 자체(2:8-9) 일 뿐 인간의 공로가 아니다.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은 구원 얻는 믿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예수님은 입술로는 예수님을 예배하면서도 삶으로는 그러지 않는 자들을 친히 꾸짖으셨다(15:7-9). 예수님은 누구든지 주님의 주님 되심, 곧 모든 것의 주 되심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의 구주가 되지 않으신다(10:36).

 

믿음과 참 제자도

갈보리로의 부르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 아래 있는 제자도로의 부르심이다. 이 부르심에 응답할 때 신자가 된다.

현 시대에는 믿음과 제자도를, 은혜와 순종을 분리해 놓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지 않으면서 구주로 받아 들일 수 있다고 하는 싸구려 믿음이 만연하고 사람들은 참된 회심이 요구하는 적극적인 삶의 변화를 살아내지 않은 채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는다.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은 분명히 안일한 믿음주의를 배격 한다.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불신자일 뿐이다.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은 오직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다(2:8). 이 진리는 우리의 모든 가르침의 성경적 시금석이다.

진정한 은혜에는 그리스도인이 자기가 선택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포함되지 않는다. 참 은혜는 불경건하고 세속적인 욕망을 부인하고 이 시대에 민감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친다(2:12). 은혜는 육적으로 살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적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을 공급 한다.

믿음도 은혜와 마찬가지로 정적이지 않다. 믿음은 반드시 회개와 복종, 그리고 순종에 대한 초자연적인 열망을 수반한다. 구원은 선물이면서 동시에 모든 대가(신자다운 삶)를 요구한다. 이 개념들은 서로 역설적이지만 배타적이지 않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 뒤에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11:28-29)라고 말씀 하셨다.

구원은 우리의 믿음이 단순히 진리를 이해하고 동의하는 것을 넘어설 때에 선물이 된다. 그리스도에게 이끌릴 때, 참 신자들은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진다.  회개한 세리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18:13)라고 고백했다. 세리는 자기가 구원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혜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 까지 나아갔을 때 세리는 구원을 선물로 받았다. 예수님은 회개가 구원받는 믿음의 핵심임을 보여 주셨다.

예수님이 정의하신 회개는 자신의 죄성을 인식하고 자아와 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을 뜻한다(살전1:9). 결코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의 필연적 결과이다. 또한 모든 인간적인 노력을 포기하는 마음과 태도와 방향의 철저한 변화(회심)를 포함한다.

참 믿음은 필연적으로 일정한 순종을 이끌어 낸다. 성경은 믿음과 순종을 동일시 한다. (3:36, 1:5, 16:26, 살후 1:8, 11:8)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행위를 배제하지 않는다. 인간의 노력의 결과인 행위와는 분명히 다른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목적, 즉 우리의 행보가 선한 행위로 채워져야 한다(2:10).

성경적인 구원은 사람이 그것을 얻기 위해 한 행위에 정의되는 것이 아닌 그 구원에 수반되는 행위에 의해 정의 된다. 참된 구원은 그 결과로서 선한 행위를 낳지 않을 수 없다(7:17).

하나님은 회개와 믿음, 성화, 복종, 순종 그리고 궁극적으로 영화가 있게 하실 것이다. 이 요소들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라 할 수 없다.


우리는 죄를 지을 것이다. 하지만 성화의 과정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2:13). 그리고 그리스도의 날이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우리를 완전하게 하실 것이다(1:6, 살전5: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