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무릎 꿇음' 존맥아더

제2부 예수님이 복음을 선포 하시다.

신운섭집사 2023. 6. 5. 23:11

제2부 예수님이 복음을 선포 하시다.


03 거듭남으로 부르시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전부 참된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불신자들도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할 수 있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 그리스도인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오늘날에는 신약의 메시지를 희석 시키고 예수님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라면 무엇이든지 구원 얻는 믿음으로 간주하는 부패한 포용주의가 출현했다.
예수님은 안일하고 경박한 반응을 멀리하시고 거짓된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메시지를 선포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자기 의에 문제를 제기 하셨고 그릇된 의도를 들추어 내셨고 거짓 믿음이나 천박한 헌신을 경고 하셨다.
요3장에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와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던 니고데모에게 그의 마음속에 있는 불신과 자기의를 아시고 그를 불신자로 대하셨다.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이 바리새인에게 안일한 믿음주의의 메시지를 주지 않으셨다. 오히려 이 사람이 믿던 모든 것에 도전 하셨다. 영적인 거듭남이 없이는 아무도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없다고 하셨다(요3:3). 예수님이 구원의 길이심(요3:14-17)을 계시 하셨다. 우리 주님은 솔직하고, 직접적이고, 요점을 찌르는 방식으로 진실을 마주하게 하셨다. 니고데모를 놀라게 했던 것에는 4가지 결정적 진리(종교의 쓸모 없음. 계시의 통일성. 거듭남의 필요성. 구속의 실제)가 담겨있다.

종교의 쓸모없음
바리새인들은 외형적인 종교의식을 중요시하는 극단적인 율법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경건의 능력은 없고 경건의 모양만 추구하는 자들(딤후3:5)의 전형이었다. 니고데모는 이런 동료들과는 달리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열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다. 예수님은 그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3:5)고 하셨다. 예수님이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구원이 선한 행위를 통해 얻는 것이라 믿었던 니고데모는 매우 혼란스럽고 낙담 되었을 것이다. 거듭남은 니고데모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영적인 거듭남을 요청하시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그간 헌신해 왔던 모든 것으로부터 돌아서라고 요구하시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물은 구약에서와 같이 성결을 상징했다. 바울은 이것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딛3:5)라고 했다. 
결론은 율법과 종교적인 의식들(세례를 포함한)이 영생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계시의 통일성
예수님의 도전은 또 한 가지 중요한 교리적인 문제를 짚어준다. 분명한 것은 구약성경이 분명하게 구원의 방법을 가르쳤다는 것이고 (딤후3:15), 예수님은 구약성경과 다른 구원의 방법을 말씀하지 않으셨다(마5:17). 이것은 은혜시대의 구원이 율법시대의 구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구원은 결코 인간의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니었다. 언제나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었으며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이었다. 구원은 겸손하게 믿음으로 자신의 죄로부터의 구원을 바라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지만 항상 새로운 출발, 새로운 출생,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함을 의미했다.
성경 66권의 메시지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회개한 죄인들이 하나님이 은혜롭게 구원하신다는 단순한 진리이다. 회개하는 마음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다.

거듭남의 필요성
불신은 언제나 무지를 낳는다(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니고데모는 거듭남을 모른다고 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믿음이 온전한 이해보다 선행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원하셨다. 바울은 고전2:14에서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 했다. 영적인 진리는 믿지 않는 자의 마음속에 새겨지지 않는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이것이다. “거듭나야 하겠다” (요3:7). 거듭남은 신자가 되는 절대적인 필요조건이다.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 여기에 복음의 출발점이 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거듭남이 없이 구원은 불가능하다.

구속의 실제  
“불뱀을 만들어 장대에 메달아라. 물린 자 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민수기21장4-9의 광야의 놋뱀사건). 그것을 보면 살리라는 말씀은 믿으면 살리라, 즉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예수를 바라보면 살리라는 말씀이다. “본다”는 말 속에는 헌신의 삶, 복종하는 삶의 의미가 들어있다. 중요한 것은 단지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높이 들리신 분에 대한 믿음이다.  구원은 종교적 의식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지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이 구원을 얻는 믿음의 요소이다. 
요3:36은 불순종이 불신과 동일하다고 말씀 하신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순종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구원 얻는 믿음이 아니다. 불순종은 불신이다. 참된 믿음은 순종한다.
구속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에게 허락된다(3:16). 예수님만 오직 구원의 근원이시다. 아무리 신실하고 종교적이고 선한 행위를 할지라도 모든 사람은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죄인들이 죄로부터 돌이켜서 멸망 당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높이 들리신 분에게 순종하는 믿음(말씀 앞에 순종)을 갖지 않는 모든 자에게는 생명의 약속이 없다. 오직 저주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