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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다

신운섭집사 2023. 6. 27. 10:21

06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다
참된 믿음은 단순히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진리만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가 담고 있는 의미, 즉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에서 주권적인 주님이 되시기 위해(롬14:9)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모든 것을 행하셨다는 진리를 받아 들이는 것이다. 복음은 하나님이 죄의 사슬을 끊고 죄인들을 구원 해 내시는 역동적인 것이며 온 마음과 영혼과 생각과 힘의 온전한 복종을 요구한다(막12:30). 영적인 맹인의 눈을 뜨게 해준다.
요9장에서 예수님은 날 때부터 맹인인 한 사람을 고쳐 주셨다. 육신의 눈을 고쳐주셨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고(요9:25), 예수님이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셨을 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경배했다(요9:35). 이러한 변화는 하나님의 은혜의 기적이었다.  

육신에 일어난 기적
맹인은 구걸하는 자(요9:8) 였으며 그가 먼저 예수님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요청 하지도 않았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몰랐다. 그러나 주님이 이 사람을 보셨다(요9:1). 이 사람을 선택하여 기적을 일으키신 것은 예수님의 주권적 은혜였다. 맹인은 기적을 위해 준비된 사람이었다. 그는 영원 전부터 선택되었으며, 예수님이 그 옆을 지나가면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 특별히 준비된 사람이었다.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단 한마디 “실로암 못에 가 씻으라(요9:7)”라고 하셨고 맹인은 주저하지 않고 순종했다. 이 순종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은 맹인의 육신의 눈을 뜨게 해 주셨다.

질문공세
이 기적은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고 많은 사람들이 눈이 어떻게 떠진 것인지 물었다.
눈 뜬 거지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으며 어디에 계신지도 몰랐다.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요9:15).” 라고 하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더럽혔다고 분개하고 예수님을 자기들의 기준으로 죄인으로 판단하고 집요하게 공격했다. 바리새인들이 적대적으로 되어갈수록 맹인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점점 확신하게 되었고 결국은 회당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여전히 불완전 했다. 그리스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예수님을 변호하기도 했으나 아직 거듭난 것은 아니었다. 육신의 눈은 고쳐졌지만 영적인 무지도 제거 되어야만 했다. 

영적인 기적
맹인이었던 거지가 회당에서 쫓겨 났다는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그 거지를 찾아 가셨다. 주님이 먼저 시작 하셨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요9:35-36).” 거지는 아직 믿지 않았지만 마음의 눈이 열려 있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요9:37-38) 거지는 망설이지도 않고 증거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거지의 영적인 눈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셨다. 그리고 그 눈이 열리는 순간 거지는 그리스도를 보고 믿음으로 반응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구원은 언제나 하나님이 먼저 죄인들을 찾아 오셨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15:16)” 라고 하셨고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눅19:10).”고 하셨다. 성경에는 그리스도는 언제나 찾아 다니시는 구주로 그려진다. 각 개인이 찾은 바 되어 구원을 얻는 것도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먼저 시작 하시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먼저 찾으시지 않으시면 아무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롬3:11). 구원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역이다. 인간의 공로나 개인의 열망에 다른 결과가 아니다. 영적인 시력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주도권과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있다.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시고,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하시는 신적인 기적이 없다면 단지 신학적 교육을 받은 이방인에 불과할 뿐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반면에 구원이 하나님의 사역이라면 결코 실패가 없다. 개인의 행동, 개인의 욕망이 바뀌지 않을 수 없고 열매 맺는 삶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구원은 하나님의 사역이므로 처음부터 궁극적인 성화에 이르기까지 변치 않고 계속 될 것이다(빌1:6).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에 필수적으로 추가되는 것이다. 신적인 주도권이 구속의 궁극적인 원인이 되지만 (세상의 기초가 생기기 이전부터 구속의 궁극적 원인이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인 믿음으로 순종의 반응을 해야 하는 우리 편의 몫이 남아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어 보셨다(베드로의 신앙고백, 마 16:15-17)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실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라고 예수님이 말씀 하셨다. 하나님이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시는 기적이 아니고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영혼의 눈을 열어주실 때 갑자기 진리가 깨달아지는 것이다. 영적인 시력은 믿고 싶어지고 믿을 수 있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거지가 새로운 믿음의 눈을 가지고 보게 된 것은 바로 주권적인 주님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게 되었을 때 주님으로 모시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의 합당한 유일한 반응은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영적 개안의 결과는 복종하고 경배하는 마음이다. 영적 맹안의 결과는 더 극심한 무지와 더 추악한 죄악과 궁극적인 심판이다. 영적 맹안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이 그들의 눈을 뜨게 해 주시는 기적뿐이다. 곧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구원을 이루신다(고전2:9-0).


구원은 초자연적이고 신적인 변화로 영혼에서 일어나는 기적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참된 사역이며 영적인 눈을 뜨게 된 사람의 삶을 반드시 바꾸어 놓는다.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즉 모든 것의 주권적인 주님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이 계시는 경배와 예배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열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결코 신학교육의 산물이 아니고 구원받은 자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사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