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다
08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눅9:10)” 이 말씀은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성경에 기록된 진리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말씀은 없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에 대해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노라” 라고 하셨다. 바울은 딤전1:15에서 “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니라” 라고 했다.
찾아 구원하심
죄인을 찾아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성이다. 에덴동산의 타락한 부부도 먼저 하나님께서 찾으셨다. 마태복음1:12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라고 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분명한 말씀은 자기 죄를 깨달아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구원의 은혜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일 자기 죄를 인정하면 예수님은 그들의 친구가 되신다(마11:19). 겸손한 회개만이 예수님의 복음에 대한 올바른 반응이다. 죄인이 악할수록 예수님의 은혜는 더욱 놀랍고, 그 죄인의 구속을 통해 영광이 드러난다. 바리새인들 같은 자기 죄에 대한 인식이 없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런 일도 하실 수 없다.
구주를 찾음
죄인들은 결코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롬3:11). 우리의 본성상, 타락한 우리들은 죄와 허물로 죽어있고(엡2:11),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떠나있다(엡4:18).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확신케 하는 능력이 우리를 어루만질 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요6:44, 65). 누구든지 하나님을 찾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어루만지심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찾으라고 요청하신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55:6)고 말씀 하신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29:13)고 하시고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5:4).고 하셨다.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마7:7)”라고 하셨다.
세리장 삭개오는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보고자 하되(눅19:3)…. 자기의 품위와 위험을 무릎쓰고 뽕나무 위로 올라가 예수님을 기다렸다. 삭개오가 궁극적으로 구원 받았다는 사실은 그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힘이 성령님의 불가항력적인 능력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삭개오가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삭개오를 감동시켰고 삭개오는 그에 반응하여 예수님을 찾으려는 노력을 했을 뿐이다. 예수님이 먼저 삭개오를 찾지 않으셨다면 구주께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찾으시는 구주
예수님은 나무 위를 보시며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19:5)”고 하셨다. 이 말씀은 요청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내가 갈 것이다라고 하셨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었지만 예수님이 그를 보기 원하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했다(눅19:6)”. 삭개오는 즐거워했고 마음이 준비 되어있었다.
회심은 신적인 기적이며 그것이 일어나는 데는 어떤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고 설명할 수도 없다. 삭개오는 자기의 엄청난 죄가 무엇인지 이미 깨달았음이 분명하고 예수님은 삭개오에게서 열린 마음을 발견하셨다.
구원의 열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뺏은 것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눅19:8-9)”
삭개오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불렀다. 예수님은 삭개오가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삭개오는 예수님을 주 하나님으로 깨닫고 자신의 주권적인 주님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께서 삭개오의 삶에서 역사하시기 전에는 결코 할 수 없었던, 결코 부인 할 수 없게 될 고백이었다.
삭개오는 빼앗는 자에서 주는 자가 되었고 착취자에서 박애주의자가 되었다. 그의 지성이 변화되고 마음이 변화되었으며 그의 의지가 행동의 변화를 낳게 되었다. 그는 옳고 의로운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께 순종 하려고 했다. 이것은 새롭게 구속받은 사람의 전형적인 반응이다. 즉 은총 입은 구속의 열매이다. 거듭난 신자들의 마음에는 언제나 순종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열정적인 마음과 자발적 순종과 변화된 마음과 행동이다.
예수님은 삭개오가 믿음 있는 마음을 가진 참 된 신자임을 인정 하셨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눅19:9).” 구원은 삭개오가 돈을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참 자손, 즉 참 신자가 되었기 때문에 찾아왔다. 행위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갈3:7)”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삭개오의 경험은 에베소서 2:8-10과 정확히 일치한다. “너희가 그 은혜에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자이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구원의 목적이다. 구원 얻는 참 믿음은 생각을 변화시키고 행동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심령을 넣어준다. 삭개오의 즉각적이고 극적인 변화는 참 믿음의 당연한 결과이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필연적 결과는 변화된 인격이다. 한 영혼이 구속 받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새로운 심령을 넣어 주신다. 그 결과는 새로운 열망이 생기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자 하는 열망, 순종하고자 하는 열망, 하나님의 의를 닮고자 하는 열망이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참 된 구원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삭개오 같이 순종하고자 하는 믿음의 증거가 있다면 그것은 아브라함의 참 후손의 특징이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 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