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굳은 심령을 꾸짖으시다
09 굳은 심령을 꾸짖으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 구원을 반대하는 자들은 구원 얻는 믿음의 개념에서 순종을 배제하는 이유 중 하나가 신앙고백을 하는 신자들도 죄로 가득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를 받아 들였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설령 그의 삶이 훗날 불순종과 엄청난 죄와 적대적인 불신으로 일관된다 해도 누구나 그리스도인으로 받아들여지고, 한 번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였다면 설령 하나님을 부인한다 해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는 이 말은 저주받을 거짓말이고 절대 속아서도 안 된다. (마10:33, 딤후2:12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 하리라)
중요한 점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천국을 보증해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된 믿음을 가진 자들이 결코 또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칭 그리스도인이 주님으로부터 돌아선다는 것은 자기들이 참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요일2:19 참조)
가롯유다는 확실한 배교에 빠진 자칭 그리스도인의 전형적인 본보기이다. 3년간이나 다른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라 다녔고 예수님 외에는 누구도 이 사람이 그리스도를 배신하리라 의심하지 않았다. 이 유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가까이 지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배운다. 그리스도께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라도 자기의 손해 볼 것과 주님의 요구를 온 맘을 다해 끝까지 견디지 못한다. 예수님과 즐거운 교제를 나누는 사람이라도 예수님께 돌아섬으로 인해 저주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유다가 보여준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신 하리라
예수님은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유다에게 경고하시고 회개하여 구원 받을 것을 말씀하셨지만 유다는 그것을 외면했다. 유다는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을 들었지만 자기의 죄와 이기심으로부터 돌이키기를 거부했다. 유다는 결코 구원 받은 적이 없었으며(요13:10-11 참조) 영원히 잃어버린바 될 것이었다.
누구니이까?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과 똑 같은 방식으로 유다를 자상하고 사랑스럽고 자비롭게 대하셨다. 유다의 불신을 예수님은 결코 직접 개인적으로 꾸짖지 않으셨다. 공식적으로 모든 제자 중 하나로 대하셨다. 다른 제자들은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신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혼란에 빠졌다. 요한이 예수님께 물었다 “주여, 누구니이까?” (요13:24-25)
예수님은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서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적신 떡을 가롯유다에게 주셨다. (요13:26)
귀한 손님
예수님은 유다의 발을 이미 씻겨주셨고, 유다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떡을 떼어 수프에 적셔 유다에게 주셨다. 예수님은 유다를 귀한 친구로 대접하셨지만 유다의 마음은 돌과 같아 예수님을 거부했다. 사탄이 유다의 마음 속에 들어가 그를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다. 유다의 약한 의지가 예수님의 마지막 사랑의 제안을 거부하였고 구원의 최종시한이 지나가고 자신의 선택에 의해 지옥으로 떨어졌다.
네 할 일을 속히 하라
예수님은 유다와의 관계를 끊으셨다.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요13:27).. 유다는 자신의 불신을 재차 확인했고 예수님은 더 이상 유다에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유다의 간증은 항상 확신에 차 있었고 그 위선은 교활했기 때문에 누구도 유다가 배반하리라 생각 못했다. 유다는 사탄에 사로잡혀 있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의 고백이 얼마나 그럴싸할 수 있는가?
밤중에
처음에는 유다도 그리스도에게 긍정적으로 반응했지만 진심과 순종하는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밝은 빛과 같은 예수님의 임재 속에서 살던 유다의 삶은 절망의 밤으로 사라졌다. 이 무서운 현실은 헌신된 마음 없이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존재한다.
죽음의 입맞춤
유다와 예수님의 마지막 만남의 입맞춤은 예수님이 아니라 유다에게 죽음의 입맞춤이었다. 포옹과 턱에 입맞추는 것은 깊은 애정과 따뜻한 사랑, 친밀함의 표현이었지만 유다는 거짓된 사랑을 이렇게 경멸되게 표현했다.
모두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다
마26:56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라고 기록한다. 예수님은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제자들의 배신을 예언하셨다. 베드로조차 세 번이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저주하며 맹세까지 했다. 이러한 제자들과 유다의 행동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들의 행동은 다른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제자들은 그 순간의 두려움과 곤경 때문에 도망쳤다. 제자들은 무서운 시험에 직면하여 실패하였고 나중에 자기들의 죄에서 돌아서서 겸손하게 예수님의 용서를 받았다. 반면 유다의 배반은 계산된 행위였으며 탐욕스런 마음에 근거해서 스스로 음모를 세우고 계획한 것이었다. 제자들의 부인은 신실한 신자들이 범하는 일반적인 것이었지만 유다의 죄는 자살이라는 악한 행동으로까지 표출하는 완전히 부패한 영혼을 보여주었다.
참된 제자의 표는 전혀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지었을 때 씻기심과 용서하심을 얻기 위해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만나 주실 때 참된 제자는 간혹 고기잡이 그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완전히 돌아서지 않고 결국에는 구주를 섬기는 삶으로 돌아온다.
거짓 제자의 특징
거짓제자인 유다의 위선적인 특징을 살펴보자
첫째, 유다는 영원한 부 보다는 일시적인 이익을 사랑했다. 영화, 성공, 지상의 보화를 원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예수님께 접근 했다가 예수님이 무엇을 주는 대신 어떤 요구를 하실 때 돌아서는 거짓제자들의 전형이며 돌밭에서 싹이 난 씨앗과 같다. 이들은 잠시 동안 그리스도를 따르지만 결국 자신의 명성, 돈, 권력을 위해 예수님을 팔아 버린다.
둘째, 유다는 속이는 자였다. 유다의 믿음은 가면이었다. 다른 이들을 현혹 시키는 속임수의 대가이며 주님을 사랑하는 척 하지만 그의 입맞춤은 배신의 입맞춤이다.
셋째, 유다를 비롯한 거짓 제자들은 자기가 받은 것에 안주한다. 누그러진 양심과 마음의 평화, 좋은 평판, 영적인 자기만족에 만족하며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자기의 사업에 유익하기 때문에, 건강, 부를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유다처럼 거짓 제자들은 세상을 사항하고 어둠을 사랑한다. 이들의 미온적인 믿음은 반드시 완고한 불신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께 우호적이고 제자처럼 말하고 행동하지만 예수님께 전적으로 헌신되지 않았으므로 추악한 배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참된 제자는 그리스도의 기대에 어긋날 수도 있지만 결코 그리스도로부터 돌아서지 않는다. 참된 제자들은 넘어질 때가 있지만, 죄에 빠졌을 때 깨끗하게 하시기를 구할 것이다. 이들의 믿음은 무너지지 않으며 일시적이지도 않고 역동적이며 구주에 대한 헌신으로 끊임없이 자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