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무릎 꿇음' 존맥아더

22. 제자도의 대가

신운섭집사 2023. 11. 2. 21:49

22. 제자도의 대가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라고 요구하신 것은 ‘더 높은 삶’이나 구원에 수반되는 믿음의 부차적인 단계가 아닌 구원으로의 초청이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제자다. 주님의 지상명령은 세상에 나가 제자를 삼아 주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이었다(마28:19-20). 즉 교회의 사명과 전도의 목표가 제자(예수님의)를 만들라는 것이다. 제자들은 믿음이 동기가 되어 예수님이 명령하신 모든 것을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제자와 신도는 사도행전에서 동의어로 사용된다(행6:1, 2, 7, 11:26, 14:20, 15:10).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예수님을 따르는 대가에 대해 주의 깊게 가르치셨다. 부자청년 관원과 같이 그 대가를 지불하기 싫어하는 미온적인 사람들을 쫓아 보내셨다. 예수님은 제자가 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비용을 잘 계산해 보라고 하셨다. (눅14:28-30. 망대를 세우는 비용계산)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경고를 무시하고 처음부터 비용을 계산하지 않은 채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적당한 정도로만, 즉 존경 받을 정도는 되지만 불편하지는 않을 정도로 기독교에 발을 들여놓고 있어 ‘명목상의 기독교’라는 엄청난 수치를 낳았다.

 

참된 신자들의 믿음은 복종과 순종으로 표현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조건적으로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주로 섬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열망하고, 겸손하고 온유하게 배우는 자들이다. 실패할 때에는 용서를 구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참된 신자들의 정신이며 방향이다. 

 

기독교 제자도로의 부르심은 이와 같은 전적인 헌신을 요구한다. 이것은 의식적, 고의적 후퇴가 없는 온전한 헌신이다. 단순히 복음의 일련의 객관적 사실들만 인정하면서, 계속 자기가 기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정말로 믿음이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만 한다.

 

마10:32-39에서 예수님은 제자도에 대해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따라 자기의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자만 자신을 따르라고 하셨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믿음과 구원의 의미를 계속해서 가르치시고, 제자들이 주님을 따르기로 선택했을 때 어떤 헌신을 했었는지를 지속적으로 상기시키셨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시인 함 
마10:32-33은 마7:21-23에 기록된 심판장면을 연상 시킨다. 이 말씀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조건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게 되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라는 뜻이다. 바울은 롬1:6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했다.

 

진정한 제자도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 위한 헌신이다. 예수님이 하신 대로 행하고 기꺼이 예수님과 동일한 대접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세상을 대면하되 두려움 없이 대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시인하면서 예수님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시인하실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하다’는 확증, 인정, 동의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확인과 믿음과 확신과 신뢰의 선언이다.  사람은 입으로 그리스도를 시인할 수 있고(롬10:9), 의로운 행동으로 주님을 시인할 수도 있다(딛1:16).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시인해야 한다.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是認)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씀한다. 시인(是認)은 인간의 사역이 아니고 하나님이 자극하시고 북돋워 주시는 것으로, 믿는 행위의 결과로 일어난다. 

 

요일4: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라고 말씀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한다.
제가가 된다는 것은 제자가 항상 주님의 편에 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고, 바울의 가장 훌륭한 제자 디모데도 일시적 영적 장애를 경험 했을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의 증거를 부끄러워 말라고 권면해야만 했다(딤후1:18).   

 

실패의 순간은 제자의 신임장을 무효화 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인정하고 싶어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주님을 시인하는데 실패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참된 제자들이라면 고의적으로, 계산된 방법으로 항상 모든 사람에게 우리의 믿음을 숨기지 않을 것이다. ‘은밀한 제자’라고 불리던 아리마대 요셉도 십자가 사건 이후에 빌라도 총독을 찾아가 담대하게 예수님의 시신 인도를 요청했다(요19:38).  

 

마10: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 하리라”는 말씀은 공개적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저주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말씀 하시는 것이다.

 

시험을 당할 때 거짓제자들은 침묵, 행동 또는 말로써 계속해서 주님을 부인한다. 이들의 삶의 모습에서 부인이 묻어난다(딛1:16). 제자인 척하지만 매우 불온한 방법으로 주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가득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서 부인 하실 것이다(마10:33). 

 

마25:31-46은 심판 때에 양과 염소를 구분 하실 것이라고 말씀한다. 그것을 어떻게 구분하여 아는가? 예수님이 주릴 때, 목 마를 때에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 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다”고 하셨다. 이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는 그들의 주장의 진실성을 입증한다. 지속적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길을 따라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형벌에 처해진다.

우선순위 바로 정하기
참된 제자의 두 번째 특성은 자기의 가족보다도 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마10:34-37).
눅14:26-27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셨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하고(마16:24), 우리를 죽은 자로 여겨야 하며(롬6:11), 내 존재의 이기적인 면들을 가장 경멸하기 까지(고전9:27참조) 옛 자아를 버려야(엡4:22) 한다고 말씀한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세상적 소유와 우리 가족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가져야 하는 태도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헌신하지 않는 자들을 쫓아버리시고 참된 제자들을 이끌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미온적인 사람들이 자기들도 천국에 있다고 착각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만일 그리스도가 최우선 순위가 아니라면 그분이 계셔야 할 자리를 내어 드리지 않은 것이다.

십자가 지기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 목숨도 잃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 합당하지 않다(마10:38).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다(눅14:27).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리기 원하신다. 필요하다면 심지어 죽을 수 있을 정도의 철저한 자기부인을 요청하시는 것이다.

 

마10:38의 ‘자기 십자가’는 어려운 상황, 만성적 질병 같은 골치 아픈 걱정거리 같은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네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을 때 제자들은 잔인한 고문과 죽음의 도구를 생각했다. 예수님이 자기들에게 예수님을 위해 죽으라고 요청하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예수님이 궁극적인 희생을 요구하시고 그분을 모든 의미에서 주님으로 인정하라고 요청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성경은 순교에 의한 구원을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죽음 앞에서조차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는 점을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를 섬길 것인가 아니면 주님을 섬길 것인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될 때, 참된 제자는 개인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주님을 섬기기로 선택하는 사람이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날마다”에 주목하라. 제자의 삶은 핍박을 초래한다. 따라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어야 한다.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고 했다.

 

참된 신자는 자기 목숨을 내어 놓는 사람이다.
“예수님과 한번 만나보라”는 전도스티커의 문구는 참된 제자도와는 거리가 멀다. 믿음은 실험이 아니다. 평생에 걸친 헌신이다. 믿음은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다. 조건도 없고 머뭇거림도 없다(눅9:59-61). 참된 제자들은 자기들이 죽을 때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전진한다는 것을 안다. 쟁기를 잡은 자는 돌아보지 않는다(눅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