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참된 예배를 요구하시다
이 4장은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가 아닌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보여주는 자기 계시의 이야기 이다 (모든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구원하심이다).
예수님은 복음이 단지 히브리 민족뿐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것임을 보여주고자 하셨다. 또한 그분의 사역이 종교적 상류층뿐 아니라 버림받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것임을 드러내고자 하셨다.
우물의 교훈 :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셨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적대적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땅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그러나 주님은 사마리아를 통과하심으로 죄인들을 위한 사랑을 보여 주고자 하셨다(여인을 만나기 위해 사마리아로 가셨다). 예수님이 그 길로 가셔야만 했던 이유는 야곱의 우물에서 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눅19:10). 만일 예수님이 일찍 혹은 늦게 우물에 도착하셨더라면 그곳에는 여인이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기초가 있기 전부터 이미 성경을 친히 기록 하셨다. 하나님의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기로 결정하셨다.
여인의 교훈 :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이 여인에 물을 좀 달라(요4:7)고 하셨을 때 여인은 예수님이 자기에게 말을 거신 것 때문에 놀랐으며, 예수님이 ‘부정한’ 그릇에 물을 길어달라고 하신 것 때문에 더더욱 놀랐다. ‘당신은 유대인으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요4;9)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시지 않는다(행10:34). 예수님은 당신이 대신 죽어주시기 위해 오신 여인의 그릇으로 물을 마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그 누구도- 이 여인도, 니고데모 같은 바리새인도, 혐오스런 나병환자도- 예수님의 사랑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물의 교훈 :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나아오라
“네게 물을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요4:10)”.
예수님은 여인이 예수님의 우물에서 물을 마셔야 한다고 선언하셨다. 예수님의 육적인 목마름이 아닌 여인의 영적인 필요가 문제였다. 예수님은 여인의 메마른 영혼을 위한 생수를 주신 것이었다.
마20:22 과 요18;11 에서는 ‘마시다’를 완전한 순종과 복종의 의미로 사용한다. 예수님이 여인에게 허락하신 생수는 구속의 실재 속에 내재된 모든 것-죄로부터의 자유, 예수님을 좇아가는 헌신,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능력,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능력과 열망-을 포함하는 구원의 선물이었다.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말라버린 영혼을 해갈시켜주는 물이었다(요13-14). 그러나 여인은 여전히 영적인 물과 물질적인 물을 혼동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여인이 생수를 받을 준비가 안 된 것을 아셨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여인의 죄와 예수님의 진정한 정체성을 언급하셔야 했다. 예수님은 결코 어떤 형태의 값싼 은혜도 인정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고백하지 않은 죄로 뒤범벅되어 있는 삶에 영생을 덤으로 주신 것이 아니었다. 주님은 여인이 자기 죄를 숨길 수 없음을 알려 주셨다(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요4:16). 여인의 마음속에 생수가 솟는 우물을 갖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자기를 살피고 바로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자기 죄의 실재와 혐오스러움을 기꺼이 고백하는 것은 진정한 영적 목마름을 증명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이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라는 말은 결국 “당신이 옳습니다. 그것이 저의 죄 된 삶입니다”라는 의미였다.
예수님은 여인의 가면을 모두 벗겨내고 여인의 부패함을 모두 아시면서도 죄를 고백한 이 여인에게 생수를 주셨다. 생수는 니고데모와 같이 종교적인 사람뿐 아니라 목마른 사람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것이다.
죄의 청산이 구원의 선결과제이다. 즉 죄를 인식하지 않은 상태는 유사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이다. 철저한 회개가 구원에 이르게 한다.
예배의 교훈 : 이제는 예배할 때다
요4:20에서 여인은 유대인들이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어디에서 예배할 것인지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3-24)”라고 하셨다. 참 예배는 산이나 성전에서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속에서 드려지는 것이고 또한 “예배 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라고 구원의 긴급성을 말씀 하셨다.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참(영과 진리로)으로 예배하는 자들이다. 구원 받고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구원 목적은 참 예배자를 만드시는 것이다.(빌3:3참조) 예수님은 자신이 죄인들을 찾아 구속하시는 목적이 죄인들을 참 예배자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여인에게 계시 하셨다. 신령과 진정으로 아버지께 예배하라는 부르심은 영적 복종에 대한 부르심이었다. 여인은 단지 물 길러 나왔다가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죄가 드러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 예배자가 되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여인이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요4:26)”로 하셨다. 거절할 수 없는 메시아의 은혜가 여인의 마음에 파고 들었으며 여인은 구원 얻는 믿음으로 반응 했을 것이다.
증인의 교훈 : 이 사람이 죄인을 용납하신다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가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행한 일을 말한 사람이 그리스도라고 말했다 (요4:28-29).
여인은 참된 회심의 특징을 보여준다. (1)자신의 필요(영적인 물)을 깨달았고, (2)죄를 고백하였고, (3)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았고, (4)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려옴으로써 자신의 변화된 삶의 열매를 보여 주었다.
여인이 거듭난 신자로서 보인 첫 번째 충동이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거듭난 신자의 공통된 경험이다. 예수님은 여인의 죄를 빛 가운데 드러내셨고 여인이 자신의 본모습을 바로 보게 하시고 그 수치로부터 해방시켜 주셨다. 여인이 이 점에 대해 자유롭게 말했다는 사실은 여인이 그 죄의 사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인의 증거로 인해 그 동네의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요4:39).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바로 예수님이 여인의 죄를 어떻게 드러내셨나 하는 것이었고 사람들은 예수님께 열정적으로 반응했다(요4:40-42). 그들은 모두 여인과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사마리아인들이었고 메시아의 오심을 두려운 마음으로 기다렸으며, 예수님이 여인의 죄를 아시면서 자비롭게 대해주셨다고 선언하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의 마음이 그분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바리새인들은 수근거렸으나(눅15:2)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기꺼이 인정했다.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9:13)”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구주가 아니고 심판자가 되셨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는 오직 자기의 소망 없음과 죄의 상태를 인정하는 자들에게만 허락 되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자에게 구원이 이른다)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데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자들을 찾으신다. 자기 죄를 고백하고 버리는 자들은 그들을 용서하시고 죄에서 자유하게 하시는 구주를 만날 것이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이런 사람들은 강력한 영적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생수의 근원을 찾을 것이다.
이 생수는 공짜가 아니다. 싸구려가 아니다. 구주께서 친히 대가를 치르셨기 때문에 목마름에 시달리는 모든 회개하는 죄인들이 마음껏 생수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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