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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무릎 꿇음' 존맥아더

제4부 예수님이 복음을 설명하시다

제4부 예수님이 복음을 설명하시다
17 회개를 촉구하시다
마4:17은 예수님 공생애 서막을 기록한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눅5:32에는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는 것”이라고 하셨다. 회개는 예수님의 공적인 설교에서 반복되는 주제였다. 예수님은 목이 곧은 무리 앞에서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3.5).”고 담대하게 선포 하셨다.

잃어버린 요소
우리 주님이 ‘너희도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하신 엄중한 말씀은 처음 그 말씀을 하셨을 때와 똑같이 오늘날에도 중요하다. 
아이언사이드 박사는 안일한 복음주의의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사람의 죄성과 죄책의 문제를 지적하여 “세상 모든 사람은 회개해야 한다”라고 외치지 않는 설교는 천박한 회심만을 낳는다. 회심의 증거는 없으면서 입으로만 고백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은혜의 구원을 말하지만 삶에서는 은혜가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었다고 떠들지만 “행위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회개를 무시함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회개가 단순히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관한 마음의 변화라고만 말한다. 이러한 회개는 죄에서 돌이키거나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개인의 죄를 깨닫게 하거나 하나님께 순종한다거나 참된 의를 추구하는 것이 전혀 없다.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에서 믿음을 요구하신 것은 곧 죄를 버리라고 촉구하신 것이었다. 처음부터 마지막 메시지까지 주님의 주제는 죄인들에게 회개를 요청하시는 것이었다. 회개는 단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관한 새로운 전망을 얻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죄와 자아로부터 돌아서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선포하라고 명령하신 메시지도 동일하다. 즉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눅24:47)”였다.

회개란 무엇인가?
회개는 회심의 결정적 요소이다(회심=회개+믿음).  회개(metanoia)는 문자적으로 ‘돌이켜 생각함’ 또는 ‘마음의 변화’를 말한다. 신약성경에 사용된 이 단어의 용례는 의지의 변화, 즉 구체적으로 죄로부터의 돌이킴을 말한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경우, 회개는 옛 생활을 부인하고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로 돌아서기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살전1:9)”라고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회개를 요청했다. 여기에 회개의 세가지 요소 ‘죄로부터 돌이킴, 하나님께로 돌아 옴, 하나님을 섬기기로 함’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참된 회개라 할 수 없다. 참된 마음의 변화가 반드시 행동의 변화를 낳는다.
참된 회개에 애통함의 요소가 포함되기는 하지만 회개가 단순히 죄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슬픔은 아니다. 참된 회개는 사람의 의지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것이다. 모든 불의한 것들을 버리고 의로운 것들을 추구하기로 의지적으로 결심하는 것이다.
또한 회개는 단순히 인간의 사역이 아니다. 회개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시는 선물이다. 딤후2:25에 바울은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라고 디모데에게 편지했다. 하나님이 회개를 주시는 분이라면, 회개는 결코 사람의 사역이 될 수 없다.
회개의 촉구는 개인의 부정함을 깨닫고, 그것을 미워하며, 그 부정함에서 돌아서서 그리스도께로 피함으로써 온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헌신하라는 명령이다. 회개는 단순한 정신적인 활동이 아니다. 참된 회개는 지성, 감성, 의지를 포함한다.  회개에 수반되는 새로운 삶에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최고 주권이 통치원리다. 회개하는 사람은 물질과 자아를 섬기는 삶으로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삶으로 돌이킨다.
지적으로, 회개는 죄를 깨닫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 개인이 자신의 죄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는 그리스도가 누구인가에 대한 인식과 함께 백성의 삶을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권세에 대한 이해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참된 회개는 종종 주체 할 수 없는 애통함을 수반한다. 애통함 그 자체가 회개가 아니다. 고후7:10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 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 죄를 범했다는 괴로운 마음의 요소를 포함하지 않는 참된 회개를 상상하기란 어렵다. 
의지적으로, 회개는 방향의 변화를 포함한다. 즉 의지의 변화다. 완고한 불순종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뜻에 복종하려는 의지, 결심이다. 참된 회개는 필연적으로 행위의 변화를 수반한다. 가시적인 행위의 변화가 없다면 회개가 있었다고 확신 할 수 없다. (마3:8, 요일2:3-6, 요일3:17 참조)
참된 회개는 전인격을 변화시킨다. 회심할 때 일어난 회개는 지속적이며 평생 계속되는 고백이다(요일1:9). 지속적인 회개의 태도는 예수님이 팔복에서 말씀하신 영적인 가난함과 애통함, 온유함을 낳는다(마5:3-6). 이것이 모든 참된 신자의 특징이다. 

회개의 열매
예수님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선포하셨을 때, 예수님이 청중에게 촉구하신 회개는 그들의 의지의 완전한 복종과 행동의 필연적인 변화를 의미했다. 즉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의미했다. 자기들의 죄를 인정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며 죄와 자아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요청이었다.
이사야1:16-17은 회개와 관련된 아홉가지 행동을 묘사하고 있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이 구절을 자세히 보면 내적으로 깨끗하게 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태도와 행동으로 구체화 된다.
구약 성경의 회개와 관련한 가르침을 보자. 에스겔33:18-19, 역대하7:14, 이사야 55:6-7, 요나3:10.
요나서에는 하나님이 니느웨의 회개를 그 백성들의 행위로 평가 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니느웨 백성들의 생각을 읽으시거나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행위를 찾으셨다.
세례요한도 회개의 증거로서 선한 행위를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마3:7-8)
회개의 열매가 무엇인가? 삶의 방식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회개한 사람은 악한 길을 중단하고 의롭게 살기 시작한다. 마음과 태도의 변화와 함께, 참된 회개는 행위의 변화를 낳는다. 사도행전26:19-20에서 바울은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라고 기록했다. 

복음과 회개 
 회개는 신약성경에서 항상 구원 초청 메시지의 근본이었다. 예수님 부활 이후 첫 공식적인 복음 전도에서 회개는 베드로의 설교의 핵심이었다(행2:28).
 회개를 배제하는 메시지는 복음이라 부를 수 없다. 죄인들이 마음과 생각과 의지의 완전한 변화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참된 복음은 완전한 돌이킴과 궁극적으로 완전한 변화로 이끄는 영적인 위기를 요구한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유일한 회심이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고 그분께 순종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같다. 이런 사람들의 신앙고백은 무의미 하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게 될 것이다. 가장 악한 죄를 지은 죄인이라 할지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천국에서 쫓겨나지 않는다. 죄를 감추고 그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며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죄를 포기하는 회개가 없이는 구원이 없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즉시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이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은 그들을 구원해 주지 못한다. 삶의 열매가 그들이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자기의 죄, 불신, 불순종으로부터 돌아서서 믿음과 순종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회개는 의로운 열매로 증명되는 참된 회개다. 이런 사람들은 참으로 의롭다(벧전4:18). 
이것이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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